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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T] 뉴스 제휴의 그늘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today T 2021. 11. 17. 09:53


[투데이T 김정규 기자] “당신의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 의견을 말할 권리가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말의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볼테르의 말로 유명한 이 문구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와 투쟁의 의미를 전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말이 새삼 떠오르는 데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빅테크 기업인 대형 포털의 제휴 조건에 따라 좌우되며 미디어 수용자의 선택권을 제약받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어서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언론사의 포털 뉴스 검색 지위 결정은 네이버·카카오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에 모든 것이 달렸다. 그들의 비밀스러우며 알기도 어려운 평가 기준은 국내 모든 미디어의 관심이고, 주의해야 할 대상이며, 가야만 하는 목적지가 된 지 오래다.

기존 미디어는 검색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생 미디어와 아직도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중소 매체 모두는 언론 본연의 업무를 위한 자사의 기준 정립보다 가장 먼저 제평위가 요구하는 기사 생산량, 자체 기사 비율, 윤리적 실천 의지의 ‘정량 평가’, 저널리즘 품질 요소, 윤리적 요소, 이용자 요소 등이 포함된 ‘정성 평가’의 기준을 맞추는 데 1년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시간과 업무의 방향성을 맞춘다. 결국 기사의 질과 양, 미디어의 윤리관까지 모두 ‘민간 위원회’의 장벽을 넘지 못한 미디어가 매달려 있는 것이다.

제평위는 간단하게 말해 언론 시장의 난립과 광고성 기사와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뉴스 검색 시장의 부작용을 정화하기 위해 출범했다. 하지만 지금의 제평위는 또 다른 무소불위의 대상이 돼 막강한 권력으로 미디어 환경을 통제, 재단하고 있다. 이제 제평위는 침대에 사람의 길이를 맞춰 자르고 늘린, 자신의 기준만이 절대적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된 셈이다.

물론 그동안 문제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종합일간지들과도 방송사와도 마찰을 빚었으며, 언론 단체들과 중소 신문사, 지역신문들과도 제휴 문제를 놓고 크고 작은 송사가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포털이 또 다른 언론이 되면서 기성 언론은 패배했고, 그들의 지위는 더욱 막강해졌다.

이제 시민들의 세금이 들어가는 국가기간통신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최근 연합뉴스는 기사성 광고를 내보냈다는 이유로 제평위의 제휴 심사에서 떨어졌다. 한 달 간의 제재를 받고도 탈락해 이제 당분간 포털에서 연합뉴스를 볼 수 없게 됐다. 연합뉴스가 법적 조치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도 말들이 쏟아진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정’, ‘이중 제재’ 등 대선주자들까지 나서며 제평위의 결정을 질타하며 법을 통해서라도 어그러진 언론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렇게까지 된 데는 포털 제휴가 곧 언론사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제평위 기준을 통과해 검색 시장에 들어가야 기사 노출의 파급력을 확보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별도의 광고 시장도 열리고, 광고 단가도 올라간다. 여기에 암묵적 동의가 시장을 지배하는 이유가 있다. 별다른 지적이 없이 침묵이 시장을 감도는 이유는 포털도, 제평위도, 다수의 미디어들도 이 시스템에서 수혜를 같이 맛보고 있어서다. 내 조직의 이익 앞에 경쟁 언론과 연대와 투쟁은 이상적 가치 실현을 위한 비현실적 행동과 다름없다.

언론 시장의 왜곡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침묵의 그늘은 더욱 더 짙어졌다. 신생 매체와 중소매체를 포털 제휴 기준에 따라 사고파는 매체 브로커가 유령처럼 공공연히 떠도는 데도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다. 수천에서 수억까지 거래되지만 거기서 미디어 역할의 본질을 걱정하는 이들은 없다. 철저한 비즈니스만이 침묵의 시장에서 스스로 역할을 굳건히 하고 있다. 우리 언론은 때론 자신들의 병폐에는 눈을 감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이상한 동업자 의식’을 갖고 있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제평위의 ‘깜깜이식’ 평가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동안 공개 요구 있었지만 ‘자사의 알고리즘과 로직은 비공개’라는 면죄부는 언제나 합리적 비판을 무색하게 했다. 평가 기준의 문제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분명 평가를 통과한 미디어임에도 누가 봐도 수준 미달의 매체의 기사와 정보가 포털에 노출되고 있지만, 제평위는 재평가시 거르면 된다는 입장으로, ‘벌점 6점’이라는 날 선 잣대로 퇴출과 입점을 반복하며 제도의 불완전성을 수정, 보완하면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민간 포털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미디어의 정보를 수용하는 ‘수용자 우민론’이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SNS와 1인 미디어의 확산으로 달라진 정보 검색 환경에서 광고성 기사로 인한 폐해와 매체 기사의 객관성과 공익성을 본인들만이 통제할 수 있고, 그것이 저질 정보의 난립을 막는 자신들의 책임이자 역할이라고 믿는 ‘자만’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지 자문할 때가 됐다. 과연 그럴까. 지금도 포털을 보다보면 광고와 연결된 수많은 정보가, 그것도 포털의 이익 구조에 적합한 정보가 누구보다 좋은 위치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논란을 해소할 유일한 길은 기준의 투명성을 확보하면 된다. 서로가 공존할 수밖에 없고 지속 가능한 상생을 위한 관계를 인정한다면 못 할 일도 아니다. ‘이익’이 언론의 뉴스 평가 기준의 어느 지점에 깊고 짙게 숨어 있지 않다면 제평위는 이제 개별 정보 수용자의 정화 능력을 믿고 프로크루스테스의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제평위의 기준은 미디어만이 아니라 포털 스스로에게도 적용돼야 객관성과 설득력을 갖출 수 있음을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동시에 언론사들도 볼테르의 말을 한 번 더 되새기는 것은 어떨까. 연대 없는 외침은 왜곡된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강화할 것이 분명하니 하는 말이다.

출처 : 투데이 T(http://www.today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