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T] 코로나 시대 산업 생태계에도 항체가 필요하다
[투데이T 김정규 기자] 우리의 산업 생태계가 이렇게 취약했던 적이 있었을까. 어떠한 하나의 일이 일어나기 전에 수백개의 징후가 감지된다는데 우리는 왜 매번 일이 터지고 난 후 준비하지 못했음을 탓하며 ‘뒷북’을 치는 모습이 익숙해졌을까. 이 같은 의문은 연초 글로벌 자동차 반도체 수급난부터 최근 요소수 사태까지 이어지며 대한민국 산업경제 생태계의 부실함과 건전성을 의심하는 계기에서 시작된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터진 글로벌 공급망 대란은 우리 산업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공급망 취약물자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고, 선제적 리스크관리가 되지 못하며 자생력이 약한 우리 산업 체질의 민낯도 보여줬다.
정부가 뒤늦게 내년 취약물자 공급과 긴급조달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우려의 시각이 많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 부족을 대비해 자체 생산 루트를 개발하고 국내 공급판로 확대,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지만 관련 업계에선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낸 생산에 수익성이 없어 수입을 선택하며 이미 예전에 접었던 사업들을 재검토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각종 정부 지원과 혜택이 주어진다 해도 생각을 해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3000~4000개로 추산하고 있다. 수출국의 생산·수출 관련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재외공관 등을 통해 국내로 조기 통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외 의존도와 관리 시급성 등에 따라 대상품목을 등급화해 리스크가 더 높은 품목은 점검주기를 단축할 방침도 내놨다. 수급안정화 방안도 마련한다. 긴급수급조절물자 지정 등을 통해 조달청 비축 대상을 현재의 금속 위주에서 국민 생활과 밀접한 물자 등으로 확대하고 민간이 추가재고를 보유할 경우 보관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또한 수입선 다변화에 따른 기업의 물류비 증가분을 지원하고,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한편 수입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최소한의 국내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첨단품목에 대해서는 기술개발도 지원한다. 범용품목에 대해서는 시설자금 지원을 포함한 세제·금융 지원 등을 추진한다. 모두 급하게 닥친 위기에 현실적 대안으로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그동안 사전 준비가 왜 되지 않고 있었는지에 대한 지적에선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미증유의 코로나 시대에 산업 영역에서 공급망은 인체의 바이러스 면역체계와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 원재료의 조달에서부터 완제품의 최종 소비에 이르기까지 재화와 서비스 및 정보의 흐름이 이루어지는 연결망은 면역체계의 모세혈관과 같아서다. 여기서부터 항체가 길러지지 않으면 생체 리듬은 붕괴되고, 이에 따른 감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예방 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와 함께라도 일상을 회복하며 살고 싶었던 우리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변이 바이러스의 창궐이 우리 일상의 시계추를 다시금 더디게 해서다. 변수가 또다시 생긴 것이다. 일상사가 변수의 연속이라 하지만 예측 가능한 부분에서의 대비는 우리가 살아가며 매번 준비하며 풀어야 하는 과제다.
올해 연이어 벌어진 공급망 대란은 우리 경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안겼다.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글로벌 경제 환경과 세계 정치사회경제학적 변수가 원인의 중요 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대한민국 산업이 그에 대한 면역력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부 바이러스에 대한 준비된 생리 면역체계 증상의 심도를 결정하듯이 산업 생태계의 면역체계도 강도와 견고함에 따라 국제 경쟁력을 좌우한다. 면역체계가 건강할수록 내상이 줄어들 듯이 산업경제 생태계의 ‘구조 건전성 구축’이 어떠한 외부 돌발 변수와 악재에도 우리 경제를 받치는 발판이 돼야 한다. 미래를 위한 도약은 체질의 강화를 기반으로 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엿보인다.
단련되지 못한 공급망 시스템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올해 우리 산업은 예방 접종을 마쳤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년은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면역체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검토되며 즉각적 행동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면역 항체의 활성화로 체질이 강화된 산업은 비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이 아닐까.
출처 : 투데이 T(http://www.today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