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치의 눈으로 경제를 재단하면 언제나 성적표는 낙제다

[투데이T 김정규 기자] “경제는 엉망이고 나라는 빚더미이고 국민은 허리가 휘는 상황, 이것이 새 정부가 현 정부에게서 물려받은 성적표라는 것을 국민에게 말씀드려야 한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1일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제5차 전체회의를 열고 “상황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전 정권의 부정적인 유산과 새 정부의 정책 성과가 뒤섞여 혼란을 주고 불필요한 정치적 공세에 휘말릴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또 “정책을 바꾸더라도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며 “부동산값 폭등과 세금 폭탄은 명백히 현 정부 잘못이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당장 바로잡기는 힘들다”며 “부동산 세금도 공시지가, 실거래가 반등률을 떨어뜨리지 않는 한 세금을 획기적으로 낮추기는 어렵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주택 공급이 바로 늘어날 수도 없다”고 밝힌데 이어 “부동산, 코로나19 대책, 경제, 국가 재정 모두 사실상 우리는 폐허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리에게는 헌 집을 주면 새집을 지어줄 두꺼비도 없어 모두 우리의 힘만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 정부는 경제 사회 전반에서 낙제점을 받아 들었으니 구원투수로 나선 새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잘못과 부조리를 바로 잡겠다는 것으로, 우리는 내려받아 이어갈 만한 어떤 것도 없어 스스로의 힘만 믿고 나아가야 하니 폐허의 무덤에서 새로 집을 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국민은 자신들을 믿고 기다려달라는 말이다.
새 정부 인수위원장으로서 지당한 말처럼 보이기도 하나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기도 하다. IMF와 국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취임 중 파면이라는 유례없는 혼란을 겪으면서도 과거 경제를 부정하며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의 정치적 이념적 성향이 달라졌을 때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 뿐이라는 점도 정치 철학의 기초라고 이해하면 딱히 비난할 대상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을 과거와 현재의 차이 식별이 아니라 다른 해외 선진국의 정권 교체와 비교해 사회 수준의 잣대로 재단해 보면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해외에선 당파와 이념적 지향점을 떠나 정책의 목적을 위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승계와 수정, 보완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젼면 폐기의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도는 여유롭고 충분한 공감대와 설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과거 정부에 대한 전면 부정이 새 정부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기대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잘 하겠다”는 다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할 뿐이다. 새 정부의 성적표도 어차피 5년 후에나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경제 체감도 또한 그즈음에서나 피로도와 만족도로 나뉠 테니 서두를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그 진정성을 믿고 싶고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기대하지 않는 이들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누가 되도 마찬가지였지만 새 정부는 근소한 차이로 정권을 이양받는 만큼 ‘국민 대통합’이라는 최우선 국정과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 부정보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일에 대한 다짐을 한다 해서 이를 비판할 세력이 있을까. 수시로 인수위에서 나오는 말처럼 일을 잘하고 싶다면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도 생색을 내지 않고도 자신들의 생각을 펼치고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조급함인가. 새 정부 또한 의지의 표현과 노력 말고는 5년 후 성적표를 장담할 수는 없다. 미래 예측의 총대를 메어 만고의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할 이들 또한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제껏 우리는 정치의 진부함에 묻혀 과거 정권의 경제 성적표를 재단하며 공화국의 역사를 이어왔다. 지금의 행보처럼 또다시 과거를 비난만하며 스스로의 정치적 올바름만 강조하다가는 우리는 무의미한 제자리걸음을 할 위기에 재차 처하게 된다.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한 걸음도. 5년 후 그 같은 결과를 기대하고 싶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역사는 진보해야 하고 경제도 정치도 진보해야 한다. ‘진보’라는 단어에 정치적 색깔만 덧씌우지 않는다면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당의 색깔 차이에 따라 매번 전임 정부는 실패한 성적표를 받았다고 전해 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제 규모는 과거에 비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빠지면서. 몸은 커지는데 실생활 체감의 질은 나빠지는 비정상적 경제 성장의 악순환에 빠진 꼴이다. 결국 매번 새 정권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실패를 하면서도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비난과 부정의 프레임만 씌우지 말고 대승적으로 과거에 대한 인정도 필요한 정치적 수준이 우리에게는 요구된다. 과거의 교훈이 그렇듯 과거를 통한 배움의 시작이 부정과 비난에서 출발한다면 지금 시작 당사자들의 수준도 그리 기대치가 높을 수는 없다.
그 나라의 정치의 수준이 그 국민의 수준이라면 우리는 이제 괴리를 인정해야 한다. 지켜보는 국민 수준은 정치적 선택에 따른 의연함과 냉정함, 합리성을 쌓아가고만 있는데 정치의 수행자들은 아직도 뜨겁고 천박한 비난의 말로만 새 정부의 행동의 당위를 구걸한다면 그 차이에서 오는 허무함이 사회에 깔리게 되는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이제라도 과거를 보는 오만과 편견을 거두고 겸손과 공정의 언어로 미래를 준비해 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굳이 분열의 언어로 갈등을 조장하며 정권 쟁취의 기쁨을 누리는 시절은 이미 끝났고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새 정부는 새 마음가짐으로 그 길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5년 후의 당당함을 믿으면서. 언제나 그렇듯 그것이 일 하는 정부의 자세이고, 언제나 그렇듯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5년 후 낯부끄러운 일이 없으려면 자만은 금물. 겸손해야 변명도 먹힐 수 있다. 그나마.
http://www.today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49
[데스크칼럼] 정치의 눈으로 경제를 재단하면 언제나 성적표는 낙제다 - 투데이 T
“경제는 엉망이고 나라는 빚더미이고 국민은 허리가 휘는 상황, 이것이 새 정부가 현 정부에게서 물려받은 성적표라는 것을 국민에게 말씀드려야 한다.”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www.today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