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2. 11:47ㆍ오피니언

[투데이T 김정규 기자] 중고차 시장을 대기업에 개방하라는 압력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심의위원회가 결정을 더 이상 미루지 않을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달 중이나 연내에는 처리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기부가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두고 법적 심의기간을 1년 6개월이나 넘겼으니 곳곳에서 원성이 나올 만도 하다.
문제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부적합’ 의견을 냈는데도 중기부가 왜 이렇게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고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는 데 있다. 긴 고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선 정국을 의식한 ‘눈치 보기’라는 뒷말이 많았지만, 핵심은 ‘독과점’에 대한 우려와 위험성을 배제한 채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중기부가 이제까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중고차 매매업의 지위를 인정해 놓고 이제 와서 시장이 커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장을 풀어버리면, 매매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영세사업자와 종사자들을 보호할 명분 자체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자 보다 못한 집권 여당 을지로위원회가 나섰고 수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없었다. 대기업과 매매업계가 한 걸음씩 물러나 대타협의 조짐도 있었지만 끝내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생존 대 이익’이라는 가치 충돌은 쉽지 않은 결론이 예견된 일이었다. 여기에는 양보와 배려라는 말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업계 간 합의를 이루기를 기대했던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었다.
유독 유일하게 이 이슈에 집중하는 한 소비자 단체는 연일 ‘시장 개방’ 요구하는 보도자료를 내며 중기부를 압박하고 있다. 동시에 대기업을 대신하는 대표 사업자단체는 설문조사와 해외 사례를 들며 같은 지점에 십자포화를 하고 있다. 주장의 논거는 허위매물로 대표되는 시장을 정상화하는 유일한 길은 대기업의 진입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독점 시장으로 변환될 경우를 위한 안전장치나 소비자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없다. 이제까지 소비자들이 피해를 봤으니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자’는 식의 주장만이 골자다.
중고차 시장에서 당사자 거래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로 속단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통계의 왜곡과 일반화의 오류도 주장에 녹아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매매업계의 자정 노력을 통한 중고차 시장 정상화를 외치던 전문가도 이제는 돌연 입장을 바꿔 또 다시 한 자리를 차지하고 대기업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시장 개방을 촉구하고 있다.
판이 바뀐다고 시장이 바뀔 것이란 막연한 기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자문해야 한다. 시장은 친목과 화합의 장이 아니다. 대기업은 이윤추구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시장 진입을 원하는 것이지 시장의 거래 질서 회복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 들어오는 게 아니다. 당연한 자본논리이다. 그곳에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여론이다. 거기서 논란의 본질이 왜곡되고 길을 잃는다.
분명, 중고차 시장은 달라져야 한다. 그 지점에서 이견이 있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그 변화는 합리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한다. 바둑에선 ‘장고(長考) 끝에 악수 둔다’라는 말이 있다. 법적 심의기간을 넘겼다 해서 시간에 쫓겨 결정을 내리면 분명 부작용에 시끄러워질 가능성이 높다.
오래 생각해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많은 이들의 생계가 걸려 있고 한번 내린 결정은 그 폐해가 나와서 그제서야 돌이키기에는 사회적 대가가 크다.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여부를 놓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은 시간이 아니다. 어떤 결정이든 그 여파를 직접 체감해야 하는 소비자와 종사자들이다. 중기부와 민간심의위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것뿐이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때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
관련기사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데이T] 뉴스 제휴의 그늘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0) | 2021.11.17 |
---|---|
[투데이T] 체면서지 않는 ‘K-소부장’ 100일도 안 돼 전략에 구멍 (0) | 2021.11.15 |
[투데이T] 진정성 있는 ESG 경영, ‘사회적 책임’ 인식이 먼저다 (0) | 2021.11.12 |
[투데이T] 진영논리에 갇힌 산업경제 정책은 쓸모가 없다 (0) | 2021.11.11 |
파국으로 치닫는 자원 전쟁 (1) | 2021.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