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0. 10:51ㆍ오피니언
[투데이T 천수진 기자] 영국사람 토머스 모어가 38세 때인 1516년에 라틴어로 쓴 풍자소설의 제목 ‘유토피아’는 ‘지상낙원인 이상향’을 말한다. 요즘 이것을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많은 탐험가가 낙원을 찾아 떠났으며, 지상낙원에 대한 그들의 첫인상은 ‘소유 없는 세상’이었다.
정부가 지난 2·4대책에서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공공기관이 직접 사업주체가 돼 재건축을 추진하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당시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반응은 싸늘했다. 강남 고가아파트를 주공아파트로 만드는데 누가 좋아하겠냐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 오세훈 서울시장이 들고 나온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은 분위기가 달랐다. 서울시가 주거정비지수제 폐지, 사업 기간 단축 등으로 민간 재개발 사업지 공모 참여 기회를 열어주자 반색하며 주민동의와 함께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 전역에 걸쳐 강남의 대치 미도, 여의도 시범, 압구정 3구역 등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추진에 먼저 시동을 걸면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다.
현재까지 신통기획을 신청한 단지만 10여곳에 달해 오세훈표 정비사업이 재개발규제 완화로 활성화되자 재건축에서도 흥행 조짐을 보인다는 평가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경우 1971년 준공돼 입주 50년 차가 된 아파트다. 지난 2017년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2018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통해 기존 일반 주거지역을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해 50층 이상 초고층으로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정부가 집값 상승을 우려하면서 사업이 계속 지지부진했다.
재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규제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분양가 상한제에 따른 낮은 분양가, 조합원 이익이 감소한다는 데 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분양가가 시세와 그만큼 괴리가 컸던 것이다. 재건축 결의부터 새 아파트 입주까지 걸리는 시간도 금융비용에 영향을 줬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의 공사기간 단축과 높이 규제 완화 같은 굵직한 제안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각종 불이익을 상쇄할 정도로 메리트가 있다는 것이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부터 재건축 사업에 청신호가 켜지면 여의도 한양, 대치 은마, 압구정 현대 등 다른 단지들도 재건축에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는데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 사업기간 단축, 이들 단지에 적용되던 층수, 용적률 등 기존의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 단지별로 각종 인센티브도 제공되니 알짜 입지와 상징성이 큰 만큼 임대주택 및 기부채납 비율 협의도 원만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울 내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이런 서울시의 신통기획사업이 정부 입장에서는 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오명을 벗고 정권 재창출의 분수령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또 시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보니 시장의 재임을 위해서는 하루속히 집값이 안정 궤도를 이뤄야 한다는 성과주의 사업이 된 것은 아니냐는 예측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 의회는 최근 오 시장이 추진하는 신통기획 예산을 삭감하면서 신통기획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말도 나왔다.
또 공공성 강화 부분이 애매하고, 인센티브로 개발을 독려하는 만큼 집값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는 계속해서 나온다. 여기에 단기간 신청 단지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업지로 선정되기도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 사업장이 너무 많으면 행정력이 뒷받침하지 못해 사업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의 인허가 단축과 규제의 유연한 적용 등 인센티브에 비해 공공성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명확하지 않아 사업지 선정 시 개발호재로만 여겨질 수 있어서다.
공공재개발처럼 공공의 개발이익 환수라는 개념 없이 민간 사업추진이 어려운 지역에 대해 주민이 신청하면 공공이 돕겠다는 것이니 조합 입장에서는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사업기간만 단축돼도 사업성 상향으로 직결되고, 소규모 재개발은 층수완화를 허용하되 공공기여(의무채납)도 의무화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이렇다 보니 실제 조합에게 받는 것 대신 주는 것만 있는데, 주택 공급을 빠르게 늘리겠다는 목표를 쫓아가다 보면 결국 투기수요 유입과 집값 과열 등의 부작용도 따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통기획은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신통기획이 아직 초기 단계여서 실제 사업이 시작될 때까지 신중히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만큼 변수는 많고 구체적인 방안이 불명확하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본래 걱정 없이 행복하고 편안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소유 없는 유토피아’가 없듯 실익 없이 재건축에 합의하는 재건축 추진위도 없을 것이다. 신통기획 공모신청 경쟁에서 후보지 탈락의 경우 사실상 1년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자치구별 주민동의, 지자체 협의 등 각종 유관기관이 협의와 검토과정을 거쳐 정책 공조에 합의하고 공공성이 확보된 주택공급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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