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T] ‘MZ세대’를 겨냥한 조직개편에 대한 단상: 젊음은 언제나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2021. 12. 15. 15:49오피니언

 

[투데이T 김정규 기자] 대기업의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그 흐름에 산업 경제계 전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향후 기업의 사업 방향성과 체질 개선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가늠좌가 인사이동과 조직개편에 달렸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번 인사는 젊음, 성과, 수평, 공정 등의 열쇳말로 정리된다.

사내 직제의 수직적 호칭 구조를 탈피하면서 수평적 조직 문화를 통한 창의성과 자율성, 생산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넘쳐난다. 여기에 ‘이제라도’와 ‘늦은 편이다’라는 정도의 비판적 지적만이 등장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대기업과 빅테크, 대형 플랫폼 기업의 위상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패스트 무버(Fast Mover)’로 바뀐 만큼 미래 경쟁력 차원에서 과거 ‘수직적통합시스템의 해체’를 통한 ‘수평적결합시스템의 구축’은 시대의 흐름이라는 게 대체적인 인사이동을 평가하는 내용의 골자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은 진부하고 진부하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는 크게 달라질 게 없어서다. 산업 환경이 변하면서 불과 십수년 전에도 세대교체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었고, 성과 지상주의는 인사의 기본 원칙이었다. 성과를 내는 직원을 승진시키지 않았던 조직이 몇이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이번 주요 기업들의 인사 결과를 다들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마치 이번 대선에서도 캐스팅 보트를 쥔 젊은층. 소위 ‘MZ세대’의 마음을 잡고 싶은 조직의 다급함이 아닌가. 젊은 조직으로 보이고 싶은 절박함. 또는 ‘가고 싶은 회사’라는 이미지를 구현하려는 선전용, 과시용 인사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모든 조직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려는 글로벌 무한경쟁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적의 인재 배치를 시도했음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적체된 조직구조 속에서 연공 서열이 중요한 문화를 가졌으며 오랜 시간 같은 기조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벤처 붐이 일고, 이후 스타트업과 빅테크 기업으로 이어지는 산업지형의 변화 속에 인사 및 조직 문화도 달라졌다. 젊은 피로 무장한 첨단기업들이 이제는 대기업을 위협 또는 그 반열에 오르며 조직 문화의 경향을 주도해 나가기 시작해서다. 실리콘밸리를 동경하는 벤치마킹도 이 같은 흐름에 힘을 실었다. 이제 ‘젊음’, ‘성과’로 대표되는 조직개편과 직제 변화, 호칭 파괴, ‘파격’으로 불리는 인사이동 문화는 전혀 파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언론의 유난스럽기만 한 인사 결과를 둔 해석을 뒤로 하고 직함과 호칭을 바꾼 것만으로도 마치 그 조직이 새 시대의 주도기업이 될 것처럼 말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예전 검찰청에서나 듣던 ‘ㅇㅇ프로’가 나오고, 여기에 ‘ㅇㅇ매니저’도 나오고, ‘ㅇㅇ쌤’도 나오고, 가장 무난하다던 ‘ㅇㅇ님’은 통용된 지 이미 오래다. 수평 문화 확산을 통해 ‘MZ세대’의 눈높이를 맞추는 조치라고 기업들은 설명한다. 그것이 미래의 생산자와 소비자로서 그들을 잡기 위한, 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그들을 대하는 전략이라고 판단해서다.

모두가 구성원으로서의 MZ세대와 소비자로서의 MZ세대를 잡기 위해 혈안이다. 그들의 중요성에 딴지를 걸 마음은 없다. 미래를 좌우할 새로운 세대임은 분명하다. 여기에 MZ세대에게는 또 하나의 열쇳말이 따라붙는다. ‘성과’와 ‘공정’이다. 이들이 업무와 가치 판단을 하는 두 가지 척도라는 뜻에서 붙이는 친절한 프레임이다.

대규모 인사철에 갑작스레 우리네 인사 문화와 그 표현방식에 조금은 다른 시선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 노동 현장에서의 젊은 세대는 언제나 자신들의 역할과 가치 판단을 통해 조직 문화를 혁신했고, 또한 매번 세대교체의 주체였으며 성과가 제대로 인정되는 기업과 공정한 조직에서 노동하기를 꿈꿨기 때문이다.

과거의 그들과 같이 지금의 젊은 세대(MZ세대)는 영세사업장에서도, 제조 현장에서도, 플랫폼 노동자로서 길 위에서도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하며 하루를 살고 있다. 대기업과 빅테크에만 MZ세대를 위한 수평적 호칭 문화가 필요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회 곳곳에선 수평적 호칭으로조차 불리지 못하는 MZ 노동자가 넘쳐난다.

기업 스스로 조직 문화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과거 ‘신인류’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신종 계층처럼 말하고 상위 특정 집단에서 그들의 개성과 능력에 프레임을 씌우는 모습은 진부하다. 달라진 시대에 달라진 젊음. 그들의 고유의 모습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과거에도 존재했던 젊음과 그들의 이상을 표현하던 진부한 단어로 여전히 우려먹는 여론은 유치하다.

성과와 공정을 원하지 않던 젊은 세대는 존재한 것이 없었다. 언론이 기계적으로 만들어대는 세대 구분 명칭인 MZ세대는 과거 ‘X세대’, ‘Y세대’, ‘N세대’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그들을 뻔한 말로 규정지으며 미래의 조직 문화와 발전을 운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던 ‘젊음’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을 알파벳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세력도, 자신들에게 새롭지도 않은 가치를 부여하는 기득권도 거부하며 도로 위에서부터 저 높은 곳까지 노동 현장에서 ‘공정과 성과’가 함께 공존하며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행동이 돼야 하지 않을까.

미래 노동 현장의 혁신을 위한 첫걸음은 과거와 조금 다른 지금의 젊음이 알파벳에 갇히지 말고 알파벳을 만들어 해석하려는 이들에게 유례없는 경험을 안기며 생산과 소비 현장에서 주체가 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