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T] 또 산업재해, 그리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불신

2022. 1. 13. 10:59오피니언

[투데이T 김정규 기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동시에 웬만해선 사과도 하지 않는다. 우리 기업들은 좀 더 과격하게 말해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사망과 중대 재해를 입어야만, 그때야 비로소 허리 굽혀 이미 유명을 달리한, 병상에 누워있는 노동자에게 뒤늦은 시늉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는다. 기업의 이익과 존위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퍼포먼스의 성격의 사과. 그들에게 그것은 면피용 생존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사고는 매번 반복된다.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고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재발 방지는 말의 잔치였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대책은 허공에 뿌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된 지 오래다. 그래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서인지 앞으로의 기대도 그리 크지 않다. 그것은 적나라하게 받아들여야 할 우리 노동 현장의 모습이고 암울한 그늘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더욱 그렇다.

지난 9일 한국전력은 협력업체 직원 감전 사망사고에 사과하는 동시에 노동자 감전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대책을 내놨다. 최근 여주 신축 오피스텔 전기 공사 과정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사망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한전은 3대 주요재해인 감전·끼임·추락 사고를 막기 위해 앞으로 미리 정한 안전 요건이 충족한 경우에만 작업을 시행한다며 세부적인 안전 대책과 안전 예산 증액을 선언했다.

이것으로 ‘죽음의 외주화’가 끝이 날 수 있을까. 현행 전기공사법상 한전은 직접 공사를 할 수 없다. 면허가 있는 업체에 공사를 맡겨야 한다. 다시 구조의 문제로 돌아왔다. 노동자의 죽음으로 표출됐던 외주화 문제에 그동안 모두가 나서 그토록 개선을 요구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구조와 시스템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원청이 하청에게 외주를 줄수록, 계약의 하부구조를 내려갈수록 영세화되는 고질적 노동의 불안정은 언제나 그렇듯 현장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그리고 또 몇일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광주 아파트 공사장에서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며 6명 노동자의 생사가 불분명하다. 또 부실시공, 안전 관리 위반 등이 지적되며 이제까지 수천, 수백 번의 사고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물거품이 됐다.

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된다. 이 법은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노동 현장의 산업재해 안전 불감증에 대해 징벌로라도 경각심을 높이고자 오랜 논의 끝에 만들어진 이 법안마저도 온전하지는 않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24년부터, 사고 위험이 유난히 높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영세사업주의 경영 부담을 고려해 조치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여러 대기업이 새롭게 시행되는 법안의 본보기가 될까 두려워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1호 처벌’의 불명예를 안기 싫어 다급히 새로운 고위 안전책임자를 만드는 등 혹시라도 있을 사고를 면피하기 위한 조치를 만들어 놓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산업재해의 반복. 의도하지 않았지만 노동자는 위태로운 현장에서 노동의 가치가 아닌 말 그대로 현장의 구조적 불안함과 매일 마주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항구적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철학이 아쉽다. ‘작업의 효율’과 ‘성과 지상주의’가 ‘사람의 가치’를 대체하는 정신 구조가 현장을 바라보는 인식에 자리하는 한 대책 마련은 요원하다.

기업 활동의 절대가치는 효율성이다. 노동과 시간, 결과에 대한 최대치를 뽑아내지 못하면 기업의 자생력과 경쟁력이 담보될 수 없어서다. 때문에 생존전략은 언제나 그렇듯 잔인하며 ‘사람’에게 눈을 돌릴 여지가 애초에 없었다. 그럼 노동자의 희생은 언제나 부가적 피해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

노동 현장에서 돈과 효율은 등가 또는 비례 관계를 갖는다. 거기에 노동과 생명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성찰은 사치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천박한 성장자본주의가 만든 현장 인식의 병폐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노동자의 죽음과 그로 인해 생긴 법안이 실효성과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불행하게도 없어 보이는 이유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정부 입법에서부터 사람의 안전과 경영의 안위를 저울질하는 한. 노동자의 존엄이 애초부터 경제적 지표로 환산할 대상이 아니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한 생사불명의 노동자들은 오늘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해부터 이런 글을 쓰는 마음이 무겁고 새로운 법안도 신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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