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T 데스크칼럼] 총수의 사법족쇄를 풀어야만 경제가 산다는 착각이 우리의 족쇄다

2022. 4. 27. 16:48오피니언

[투데이T 김정규 기자] 정권 말기 특별사면 시기가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굵직한 경제계 인사들을 위한 구명운동이 한창이다. 이유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경제발전과 국민통합이다. 이들이 감옥에서 나오는 것만이 나라 살림과 갈라진 국론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점을 통촉해 달라는 호소에 가깝다. 애절하고 간절하다.

이 같은 절규의 전위에는 주요 경제단체가 서 있고 이들의 말은 증폭돼 경제지들이 앞장서 거드는 형국이다. 왜 그들이 수형생활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다면 더 진정성이 느껴졌을 텐데 그런 내용은 한 글귀도 없이 무조건 풀어 주는 것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 대부분 호소문의 주요 골자다. 경제단체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일 테고, 경제지들은 광고주를 살려내기 위해 밑밥을 알아서 던지는 모양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주요 경제5단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 회장 등 총 20명 이내의 일부 기업인의 사면복원을 법무부와 청와대에 청원했다. 부처님오신날인 다음달 8일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에 이들을 포함시켜 달라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코로나19와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가 경제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인 점을 청원 이유로 들며 경제 위기 극복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역량 있는 기업인의 헌신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경제5단체는 “경제계는 투명경영, 윤리경영 풍토를 정착하고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보자. 이들이 말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주범인 당시 최순실과 연루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오는 7월 가석방 형기가 만료되지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향후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신동빈 회장도 국정농단 당시 월드타워 면세점 승인 등에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신 회장이 하남체육시설 건립비용 명목으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 건냈다가 돌려받은 혐의(뇌물공여)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나 2019년 2월 경영에 복귀했다. 이중근 회장은 탈세와 4300억원 상당의 횡령·배임 등 죄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닌 데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때는 70억원을 주고 세무조사를 무마하려 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황제보석’ 논란까지 겪은 인물로 이들 모두 누구에게나 평등한 준법의 틀 안에서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들은 경제단체들이 말한 대로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하지 않아 법치주의 국가에서 그 죄를 묻고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경제인들인 것이다. 과연 이들이 사법 틀에서 나와야만 치유와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고, 나라의 경제가 다시금 성장 가도를 달릴 준비가 되는 것일까.

경제지와 보수언론들도 애처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앞다퉈 대문짝만하게 지면을 할애하며 기사와 사설을 쏟아내는 것도 선과 도를 넘어 보인다.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고민은 없고 무작정 경제가 어려우니 이들을 풀어줘야만 대규모 고용 창출도 이뤄지고 신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대형 M&A도 성사된다고 외친다. 또 글로벌 경쟁사가 오너의 법적 리스크를 꼬투리 잡는 일도 벌어져 협상력이 떨어지니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고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사법족쇄’ ‘사법 리스크’를 풀어 주는 대승적 판단만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니 ‘결자해지’ 차원에서 문 정부에서 통 크게 사면하라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와 사법 공정의 역사가 아무리 짧다고 해도 지금의 이 같은 나팔수들의 외침은 논리적 근거가 빈(貧)하고 허(虛)하고 속되다. 딱히 지금 감옥의 그늘에 있지도 않는 이들이 이미 실질적으로 기업 총수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취업제한 등 몇 가지 사법 제약에 있는 것마저 없애야만 나라살림이 나아진다는 얄팍한 논리에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 경제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경제사범에 대해 대단히 관대한 정서를 이제껏 경험해 왔다. 그러나 경제사범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노동인구의 묵묵하고도 성스럽고 지겨운 밥벌이를 존중하는 사회라면 갖은 불법과 편법으로 얼룩진 경제범죄는 대다수 성실한 노동자를 능멸하는 중죄다. 때문에 더욱 엄하고 강하게 처벌돼야 한다. 그것이 경제 민주화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고 공정 경제라는 대장정의 길의 첫걸음임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언제까지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 등 특정 인물과 지위가 이 사회와 경제 전반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려 하는지 안타깝다.

일인 독재의 향수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사회임을 곳곳에서 느끼지만 사회와 경제는 시스템과 노동자, 시민 구성원의 힘으로 받쳐져 있고 그 힘으로 역동과 변화의 발판을 마련해 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우민(愚民)의 지위를 덧씌우려는 게 아니라면 어떤 사회와 조직의 우두머리가 돌아와야만 나의 부귀가 이뤄질 것이란 착각.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미 각성한 노동자와 시민은 더이상 난세의 영웅을 기대하지 않는다. 마블의 영웅담이 아직도 사회경제 영역에서 발휘될 것으로 보는 일차원적 경제 나팔수들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기를 기대하며 특별사면에 대한 논의는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죗값을 다 치르고 자신의 과오를 끝까지 책임지는 경영자를 기대하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일까. 경제단체들이 말하는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은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그들이 없어도 경제는 돌아가고 세상도 돌아가고 나라도 쓰러지지 않는다. 그게 대한민국이었고 지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