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程度)를 넘은 언론의 편파성과 중고차

2021. 10. 14. 11:39오피니언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다루는 언론의 편파성이 도를 넘었다. 자동차 업계 시장 구조에서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일방적 여론을 형성하며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잃어버린 저울에 무게추를 더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일면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광고주와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국내 언론 시장에서 현대차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옹호하는 것은 언뜻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 언론사가 특정 이슈의 논조를 결정하는 것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시퀀스가 아니다. 우리 미디어의 현주소이자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선과 균형이 필요하다. 주장의 근거가 필요해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매매업계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기득권’으로 규정한 기사도 등장했으며, 별다른 객관적 데이터도 없이 대기업을 대변하는 사업자단체의 지극히 의도된 설문조사 결과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등 눈꼴 사나운 모습이 버젓이 온라인을 도배하고 있다.

실상은 이런데도 말이다. 아무리 중고차 시장 규모가 신차 시장을 압도하는 상황이라도 현장은 그렇지 않다. 고가의 재화를 파는 중고차 딜러가 일정 금액 이상의 고정급을 월급으로 가져가는 일은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어서다. 성과제에 따른 불안전성은 종사자의 또 다른 고충으로, 일선 종사자의 현실적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이들로 구성된 매매상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쉽게 써버린 시장 활성화를 가로막는 ‘기득권’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주류 언론이 작정한 기사에서 보이는 ‘낙인효과’는 생각보다 파급력이 세다. 최재 부족과 별도로 한번의 낙인은 주홍글씨가 돼 시장 여론을 압도한다.

중고차 시장은 값비싼 중고 재화임에도 시장 규모와 반대로 후진성의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에 따른 오해는 비난의 화살이 돼 시장을 왜곡, ‘불신의 정서’를 소비자에게 일반화했다. 때문에 오랜 시간 매매 질서를 지켜 온 선량한 사업자도 ‘중고 프레임’이 가져오는 거래의 불확실성과 불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불합리하게 보이는 매매시스템을 선진화하지 못한, 자체 정화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중고차 사업자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시장 독과점을 용인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자비하고 차별적 기사에는 이런 얘기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을지로위원회와 대기업, 매매업계가 주축이 된 자발적 협의체인 중고차매매산업발전협의회는 상생안을 내놓지 못하고 중고차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결정 여부를 중소벤처기업부로 넘겼다. 이러자 민간심의위원회 협의에 앞서 중기부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업계가 나서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대기업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 앞장서서 ‘중기부의 빠른 결정 만이 중고차 시장 정상화의 첫걸음’이라는 논조를 꾸짖음과 ‘답정너’식 독촉으로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또 다시 알아서 부정적 선입견을 재생산하는 기제가 발동하며 중기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는 일방성을 넘어 편파적이다. ‘정도(程度)의 선’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시장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해당 아이템을 다루는 기사들은 대부분 ‘일단 시장을 열고 보자’는 식이다. ‘대기업이 어련히 잘 하지 않겠는가’라는 기대감도 녹아 있다. 기존 매매업계가 ‘허위매물’로 대표되는 시장의 이미지를 바꿔놓지 못했으니 진입장벽만 낮춘다면 해결사가 등판해 이를 일거에 해소하겠다는 영웅담도 나온다. 주장의 객관성을 담보할 근거가 없으니 ‘담(談)’이 되고 이야기가 되는 분위기다.

미디어의 원칙에 부합하는 기사인지는 스스로 판단하겠지만 그들의 솔직함이 결여된 부분은 안타깝다. 광고는 언론사에게는 생명줄이다. 언론사도 조직이고 영리활동을 해야 하는 기업이다. 기자도 직장인이고 조직의 생존을 위해 부합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언론인에게 밥벌이를 마다하고 손가락만 빨며 사회에서 기대하는 언론의 준칙만 시종일관 준수하라는 주장은 순진무구하다.

이번 중고차 이슈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중고차 시장을 이해하라는 것이 아닌 실태 파악만이라도 제대로 해 보라는 것이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전산 고도화에 대한 노력과 딜러 교육 체계화, 소비자 보증체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공존하며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모든 노력이 무시된 채, 대기업 진입 시 시장의 7~80%를 장악할 독점에 대한 우려의 시선과 불가피하게 다가올 가격 인상 구조 구축 과정에서 오는 소비자 폐해 분석 등을 무시한 채 일방적 주장만 펼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다른 기사에서 기계적으로 보이는 최소한의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말이다. 대기업의 주장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맹점은 짚지 않은 채 한쪽의 피해의식을 부각하며 일방적 당위를 확증하려는 기사는 이미 공정성을 잃었다.

신문 지면에 현대차의 광고가 실리며 나오는 기사에 대한 고민. 우리 내 밥벌이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도(正度)의 선’에 대한 고민은 수반돼야 하지 않나 싶어서 하는 말이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상도덕에 대한 고민이 언론의 고매한 원칙에서 매번 무시되고 있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기사 아이템별, 수익 저울질 후에도 지니고 있을 우월 의식을 버릴 때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