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T 데스크칼럼] 흔들려는 말과 흔들리는 중대재해처벌법

2022. 3. 31. 14:21오피니언

[투데이T 김정규 기자]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방해 요소를 우선 제거하겠다.”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 6단체장들과 당선 이후 처음으로 회동한 자리에서 다짐처럼 한 말이다.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이 말에 경제 단체장들은 큰 기대감을 나타내며 화답했고 앞으로 기업과 정부의 친근한 관계에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앞서 윤 당선인은 대선 공약으로 규제개혁 전담기구를 설치해 등 국내 기업을 조력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개혁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또 선거운동 기간 내내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최저임금 등의 개선을 강조해 왔다. 다시 정권이 바뀌면서 산업경제 전반과 노동 환경의 대대적 손질이 예고된 셈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철학과 공익에 대한 판단에 따라 정책 변화를 추진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정치의 목적이자 생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부분은 그의 표현 방식과 편향성이다. ‘제거’라는 말.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법적 방해 요소를 없애 버리겠다’라는 말은 마치 지금까지 정부들은 기업 성장을 방해하는 정책들을 펼치며 경제 성장을 추구했으나 실패했으니 본인이 나서 이제까지의 폐단을 ‘없애주겠다’는 의지를 내포한 것처럼 들리니 문제다. ‘제거’라는 단어 선택이 극단적이고 조급해 보이는 이유다. 규제를 만든 데도 이유가 있듯이 푸는 데는 그만한 충분한 설명과 합의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은 것이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역대 정부 모두 그 시기의 국내 기업 환경과 세계 경제 흐름에 걸맞은 산업경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들 모두 서민 살림살이를 고민했으며, ‘경제 살리기’라는 기치 아래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제껏 어느 정부가 노동, 기업 활동을 일부러 저해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을까. 그 시행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충돌과 섣부른 강행 의지가 화를 부르기도 했지만, 정책 자체의 순수성은 언제나 ‘나라 발전’에 방점이 찍혔다. 교과서 수준에서 당연히 그렇지 않았겠는가.

발언의 ‘편향성’도 위험하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지지세력만을 위한 정책은 포장된 채 실행됐지만, 대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정권이 모두가 아닌 한쪽만의 지지를 위한 포지셔닝을 하겠는가. 그것은 위험부담이 대단히 커서 정권의 위협을 자초하기 때문에 대놓고는 실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번 윤 당선인의 발언에 걱정 어린 시선들도 가득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어렵게 만들어 낸 ‘중대재해처벌법’이 친기업 성향의 정책 추진으로 제대로 실효를 거두기 전에 넝마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지금도 산업재해 소식이 쏟아지는데도 ‘위험의 외주화’와 ‘노동 환경의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기본적 장치를 ‘잠재적 범죄자’와 ‘기업 환경의 위축’이라는 프레임으로 대체하려는 세력은 끊임없이 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존엄과 조직의 이익을 두고 벌어지는 판단의 저울질에서 사고의 진척이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작업 생산성을 위해, 효율성을 위해 노동자가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들도록 최고 결정자가 헤아리고 주의해야 한다는 법의 취지가 어느 부분에서 그다지도 부담이 된다는 것인가. 경각심을 갖고 지키면 되는 법이다.

대통령이 국민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지켜야 하는 것을 최우선의 책임으로 인지하듯이, 기업 최고 책임자가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것을 어쩔 수 없는 외주화의 문제로 치부하며 회피해서도, 처벌의 두려움으로 할 일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엄살떨 일도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죽음으로 점철되는 후진적 산업 생태계를 개선하고 더 나은 노동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차원에서 기업의 책임과 행동을 지켜보자는 사회적 약속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벌써 새 정부가 여러 산업경제 정책을 극단적으로 손질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수정이나 보완이 아닌 마치 다 들어 엎고 새판을 짜겠다는 각오도 보인다. 그것이 시대적 사명이고 당선의 이유인 듯한 발언들도 이어진다. 산업경제 영역에서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이 염려스러운 것은 전 정부의 모든 것을 배제하려는 ‘전면부정’의 태도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에서는 통합과 공존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당선인은 입에서 나오는 ‘커리어’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검찰 노동 공무원의 현장에서 최고 자리까지 역임한 월급 노동자로서의 귀족성과 권위성을 벗고 ‘모두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를 바란다. 여소야대의 정국이 고난스럽겠지만 모두를 위한 선의만 전달된다면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물론 그 같은 전례는 많지 않지만.

그토록 스스로 외쳤던 ‘모두를 위한 새 시대’를 열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말의 품격과 중립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경솔하고 기울어진 말로 해야 할 일의 진심마저 오해받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해서 하는 말이다. 

관련기사

http://www.today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70 

 

[데스크칼럼] 흔들려는 말과 흔들리는 중대재해처벌법 - 투데이 T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방해 요소를 우선 제거하겠다.”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 6단체장들과 당선 이후 처음으로 회동한 자리에서 다짐처럼 한 말이다. 규제 완화를 골

www.today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