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T] 8·16 대책, ‘철학’도 좋지만 ‘적응’이 필요하다

2022. 8. 31. 14:49오피니언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 연구위원

[투데이T] 국토부가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내놨다. 이 방안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인·허가 예정 수량만 270만호에 달한다. 이번 공급 계획이 충실히 이행된다면 주택 가격에 하방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80년대 말에서부터 90년대 초까지 진행됐던 ‘국민주택 200만호 건설’ 이후 주택가격이 다소 안정세를 찾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계획 물량 중 수도권에 공급하기로 예정된 물량은 158만호에 달한다. 총 30만호가 공급됐던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를 5개 만들고도 남는 수준이다. 이것은 2017년 이후 수도권 집값의 가격 상승폭이 컸던 만큼 이후에 미칠 영향에도 주목해야 한다.

국민주거 안정 실현 5대 전략 중 가장 이슈화된 것은 도심 공급 확대이다. 주택 수요가 집중되는 곳에 공급을 확대해 제한된 물량으로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신규 정비구역 지정을 확대, 민간 도심복합사업 추진, 재건축부담금과 안전진단 완화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은 공공주도와 수요억제의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던 그간의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분산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주택공급 기반을 선언적으로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는 점에서 리스크도 그만큼 크게 작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외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을 비롯해 주택시장에 변수가 많다.

지난 정부에서도 도심의 주택 공급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됐지만,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먼저 사업의 추진 주체다. 기존의 도심 공급 정책은 공공사업자가 중심이다. 공공사업자가 사업 주체가 되었을 때의 장점이 많지만, 반대로 사업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이윤의 상당 부분이 공익의 이름으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특정 지구 몇 군데를 제외하면 시장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

다음으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각종 규제를 강화한 점이다. 도심 내 대량 공급의 유일한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사업 유형을 제쳐두고 정책을 설계하다보니 도심 공급 물량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 아니라 개발 규모에 한계를 드러냈다.

다행히 이번 공급 방안에서는 민간의 자유로운 참여를 장려하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포함됐다. 아직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시장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역시 270만호라는 양적 목표를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려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목표 일정과 관련한 사항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국민주택 200만호 건설 당시의 논란을 생각해보자.

수량 및 기한을 맞추기 위해 전력을 다한 결과, 부실공사 논란은 물론이고 바닷모래 세척 과정이 미흡해 입주도 못 해본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지은 전례도 있다. 건설공사에 필요한 핵심 인력들의 인건비가 치솟은 것은 물론이다.

당시에는 착공 물량 기준이고 이번 계획은 인·허가 물량을 기준으로 한다는 디테일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선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면밀한 시행이 담보돼야 한다.

둘째, 실제 시장에 풀릴 수 있는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 시장에서의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신규 택지사업과는 달리 정비사업은 목표량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실제 공급량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정비사업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개입되기 마련이고, 그만큼 예기치 못한 변수가 개입할 여지도 많기 때문이다.

원주민에 해당하는 조합원들이 입주할 물량을 제외하고 나면 공급 물량 중 일반 분양이 많다고 보기도 어렵다. 신규 택지에서의 건설 사업도 ‘공동주택특별법’에 근거한 사업은 건설 물량의 최소 50% 이상을 공공임대와 공공분양으로 채워야 하는 등 제약이 많다. 시장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호수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270만호의 영향력이 다소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책 간 보조를 맞춰야 시장에 쇼크를 덜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처럼 시장이 활황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공급이 많아지면 경직적인 수요 때문에 가격의 낙폭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새 정부의 정책은 멸실을 동반하는 방법을 전면에 내세웠기에 특정 시점에 개발이 집중된다면 철거된 주택으로부터 임차 수요가 갑자기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구도시 개발의 균형을 맞춰야 톱니바퀴처럼 원활한 공급이 진행될 수 있다.

‘1세대 1주택’ 철학에 따라 수요 억제책에 중점을 두었던 지난 정부의 일방향 정책을 답습해 공급일변도로 추진해서는 시장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 선행지표를 통해 시장의 시그널을 포착하고 경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정책 시행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의 흐름도 지속 관찰하여 시장 요구에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말바꾸기 정책’이라 비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의 폭이 큰 현 상황에 어떤 철학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향후 추가 발표될 세부 실천 방안에서 유연한 정책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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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실 연구위원은.

연세대 도시공학과 박사학위를 취득, 서울시와 KB부동산 시장경기자문 및 지자체 분양가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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