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5. 15:39ㆍ오피니언
산업 현장이나 학계에서 노동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다. 누구나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들어 봤을‘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불리는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지능화, 전동화, 로봇화는 향후 일자리 감소와 노동의 체질 개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뒤섞이며 노동의 가치가 가야 할 방향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웠다.
결국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시대는 AI, 클라우드, 빅테이터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점 기능을 확대, 인간을 대체하며 일손의 ‘손절(損切)’을 앞당길 것이란 전망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동의 역사는 기술 진화의 역사였다. 때문에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노동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해 왔다. 그것은 무방비 상태에서 대량 해고와 실업으로 올 사회적 파장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작업이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이에 예측은 정확해야 하고, 피해는 정밀하게 진단돼야 하며, 대안 마련은 단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 노동에 대한 고민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산업재해와 안전사고, 이에 따른 인명피해에 대한 인식의 진화와 성찰 없이 진행되는 진단은 무용하다. 더 나아가 ‘기술과 효율’ ‘생산성’에 방점이 찍힌 미래 노동에 관한 담론은 위험하다. 지금 이 시간도 산업 현장에서 무시 또는 경시되고 있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농후하거나 가중될 수 있어서다.
노동 현장에서 우리가 지켜본 잔인한 희생의 결과물들은 여전히 개미지옥을 벗어나지 못했다. 법제화를 통해 나아가려 했지만 시도는 매번 무너졌으며, 정치적 판단에 조율되며 본질은 실종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내년 1월 시행된다. 한쪽에선 대통령이라도 되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바로 폐지하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노동자의 요구를 외면한 시행령이라며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표이사 등 경영 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경영 책임자가 최소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도록 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법인을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로 하고 사업주의 경우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할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을 한 데 비해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차이를 갖고 있다.
모두가 생명 존엄을 지키는 데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방법과 처벌 수위, 세부 사항에는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정말 이게 다일까. 우리는 그동안 나라의 발전 앞에서, 기업의 이익 앞에서 노동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것이 나라 살림을 찌우는 길이었고, 부국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었으며, 새 시대로 가기 위한 부수적 피해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각종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의 연이은 죽음이 추모와 연대로 반향을 일으켜 새로운 담론과 방법론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그 후 재발 방지를 위해 결과물로 도출하려는 지난한 과정과 해법의 편린은 매번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 같아 잔혹했다.
지금도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생명 존엄의 상흔을 이익과 저울질하는 시도 자체와 인식은 모두 천박하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시대에서 미래 노동의 질과 인재의 전환, 일자리 우려에 앞서 ‘이익과 생명’이 ‘이윤과 재해’가 같은 위치에서 논의되는 것부터 차단할 방법을 위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죽음의 외주화’라는 산업 구조의 부조리에 대한 의제 설정도 중요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노동하는 생명’을 다루는 인식의 저울에 ‘영점’을 재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념도 설명하기 힘든 사회경제 용어가 판을 치는 시대에도 중심은 사람이고 주체도 사람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노동의 미래가 또 다른 현장의 생명을 계속 담보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판을 바꾸려 행동하지 않는 한 단 한 걸음도 진화한 노동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미래 노동을 위한 사회경제학적 진단은 다시 시작돼야 한다.
출처 : 투데이 T(http://www.today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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